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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빈자리
저의 어머님은 6.25 미망인 이었습니다.
모친이 21살 때 저는 6개월 유복녀가 되어 22살 1951년 2월 8일 제가 태어났습니다. 남편의 전사편지를 받고 밤낮 없이 눈물만 흘리고 밭에 가서 혼자 일을 하면서 항상 눈이 부어 있었다고 합니다.
제가 자라면서 조금 마음이 편하고 같이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남들은 재혼이라도 하지만 저 혼자 두고 어떻게 불쌍해서 못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어머님의 말씀 저의 외가에도 형제분이 군에 가서 전화를 하셨답니다.
그것도 두분이 큰외삼촌께서는 결혼을 하셨는데 딸을 한명 두고 외숙모가 외할머님께 딸을 맡겨놓고 재혼을 하셨답니다. 너무 애가 불쌍하게 공부도 못하고 불쌍하게 크니까 저를 버리고 가면 저 자식도 큰아버지 삼촌 속에 그렇게 아니 더 불쌍하게 클 것 같아 재혼을 생각도 못하셨답니다.
마음을 굳게 먹고 초등학교 졸업을 시켜 대구로 나왔답니다. 어머님은 보훈청으로부터 달서구 침산동에 있는 대한방직을 다였습니다.
저도 고등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졸업 동시에 남편을 만나 저 역시 1970년 2월에 졸업하고 3월에 아이를 가졌습니다. 남편은 어렵게 공부하여 저는 9년 차이 남편을 만나 1남 3녀를 두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어머님은 딸 하나 잘키워 시집보내 잘 사는것 보면 소원이 없겠다고 항상 하셨습니다. 공부하는 사위를 만나 고생하셨습니다. 남편은 석사,박사 공부하여 대학교 교수님이 되셨습니다.
‘어머님을 기쁘게 해주셨습니다.’
저는 세아이를 출가시키고 막둥이 결혼을 하려고 날짜를 받아놓은 날 어머님이 쓰러져 가지고 3개월 고생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님의 빈자리가 정말 이렇게 큰것을 저는 몰랐습니다. 아이들이 자랄 때도 물론 키워주시고 직장도 다니면서 돌바주셨습니다. 어머님 돌아가시고 불행히 저의 남편께서도 당뇨병이란 판정이 나왔습니다(술을 좋아하니까). 엄마 가시고 슬픔도 생각 못했습니다.
일주일에 3번씩 혈액투식을 하였습니다. 혈액투식을 3년 6개월을 하였습니다.
힘들다 작년 2011년 6월 23일 돌아가셨습니다. 이제는 4남매를 출가하고 마음이 가벼워지고 모든게 새로웠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불효죠
제가 어머님을 그동안 잊고 살았습니다. 너무 힘이 들었으니까 환자한테 고통을 받으니 저녁에 수면제 안 먹으면 잠을 못잡니다. 그러데 이제는 약도 안먹고 편하게 살려고요.
어머니!! 그립습니다. 어머니의 빈자리를 그리워하며 저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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